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69회 30번 해설 — 임오군란의 영향
정답 ④번출제 쟁점 임오군란의 영향발문 옳은 것 고르기
문제
다음 자료에 나타난 사건의 영향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자료: 이때 세금을 부과하는 직책의 신하들이 재물을 거두어들여 자기 배만 채우면서 각영(各營)에 소속된 군인들의 봉급은 몇 달 동안 나누어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훈국(訓局)의 군사가 맨 먼저 난을 일으키고, 각영의 군사가 잇달아 일어났다. 이들은 이최응, 민겸호, 김보현, 민창식을 죽였고 또 중전을 시해하려 하였다. 중전은 장호원으로 피하였다.]
- ①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 ② 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 ③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세워졌다.
- ④ 일본 공사관 경비 명목으로 일본군이 주둔하였다. ← 정답
- ⑤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12사를 두었다.
선지별 해설
①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선지 진술은 틀림(X)
강화도 조약은 1876년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체결되었다.
② 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 선지 진술은 틀림(X)
김기수의 수신사 파견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이다.
③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세워졌다.
이 선지 진술은 틀림(X)
척화비는 흥선 대원군이 신미양요 후 세웠다.
④ 일본 공사관 경비 명목으로 일본군이 주둔하였다.
이 선지 진술은 옳음(O)
임오군란 후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맺어 공사관 경비 명목으로 일본군 주둔을 허용하였다.
⑤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12사를 두었다.
이 선지 진술은 틀림(X)
통리기무아문과 12사는 임오군란 이전인 1880년에 설치되었다.
핵심 요약 (Q&A)
- Q.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69회 30번의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 A.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69회 30번은 임오군란의 영향에 관한 문항으로, "옳은 것"을 고르는 문제입니다.
- Q.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69회 30번의 정답은?
- A. 정답은 ④번입니다. 임오군란 후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맺어 공사관 경비 명목으로 일본군 주둔을 허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