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1회 22번 해설 — 임진왜란
문제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가) 임금이 여러 도(道)에 명을 내렸다. “나라의 운세가 매우 좋지 않아 역적 이괄이 군사를 일으켰는데, 여러 장수들이 좌시하여 수도가 함락되고 말았다. …… 예로부터 반역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이처럼 극도로 흉악한 역적은 없었다. 종사와 자전*을 염려하여 남쪽으로 피란하기로 결정하였다.” (나) 정명수가 심양에 있는 소현 세자의 관소에 와서 용골대의 뜻을 전하기를, “세자가 이곳에 들어온 지가 이미 5년이 되었으니, 어찌 스스로 먹고살 길을 마련하지 않는가. 세자와 인질들에게 어찌 먹고살 식량을 늘 지급해 줄 수가 있겠는가. 경작할 땅을 주어 내년부터 각자 농사를 지어 먹도록 함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자전(慈殿): 임금의 어머니

- ① 정문부가 길주에서 의병을 이끌었다
- ② 삼수병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이 설치되었다
- ③ 영창 대군이 사사되고 인목 대비가 유폐되었다
- ④ 이덕형이 구원병 요청을 위해 명에 청원사로 파견되었다
- ⑤ 김상헌 등이 남한산성에서 화의에 반대하여 항전을 주장하였다 ← 정답
선지별 해설
① 정문부가 길주에서 의병을 이끌었다
이 선지 진술은 틀림(X)
정문부의 길주 의병(북관대첩)은 임진왜란(1592) 때로, 이괄의 난 이전이다.
② 삼수병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이 설치되었다
이 선지 진술은 틀림(X)
훈련도감은 1593년 임진왜란 중 설치되었다. 이괄의 난 이전이다.
③ 영창 대군이 사사되고 인목 대비가 유폐되었다
이 선지 진술은 틀림(X)
폐모살제는 광해군 때의 일로, 인조반정(1623)의 명분이 되었다. 이괄의 난 이전이다.
④ 이덕형이 구원병 요청을 위해 명에 청원사로 파견되었다
이 선지 진술은 틀림(X)
이덕형의 명 청원사 파견은 임진왜란(1592) 때로, 이괄의 난~병자호란 사이가 아니다.
⑤ 김상헌 등이 남한산성에서 화의에 반대하여 항전을 주장하였다
이 선지 진술은 옳음(O)
병자호란(1636)은 이괄의 난(1624)과 소현 세자 심양 억류 시기 사이의 일로, 김상헌은 척화론을 주장하였다.
핵심 요약 (Q&A)
- Q.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1회 22번의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 A.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1회 22번은 임진왜란에 관한 문항으로, "옳은 것"을 고르는 문제입니다.
- Q.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1회 22번의 정답은?
- A. 정답은 ⑤번입니다. 병자호란(1636)은 이괄의 난(1624)과 소현 세자 심양 억류 시기 사이의 일로, 김상헌은 척화론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