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7회 41번 해설 — 무장 독립 전쟁

정답 ①번출제 쟁점 무장 독립 전쟁발문 옳은 것 고르기

문제

밑줄 그은 ‘이 부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국민부는 중국의 반일 단체와 연락을 취하여 대규모 항일 행동을 계획하였지만, 각지의 일본 경관대에게 단원이 검거되고 무기를 압수당하여 세력이 꺾였다. 그러나 당시 이를 피한 양세봉, 양하산 등 주요 인물이 흩어졌던 단원을 모아 국민부 산하의 무장 단체를 재편하여 행동을 재개하였다. 총사령관 양세봉의 지휘 아래 이 부대는 대도회 등과 함께 한중 연합군을 편성하여 소양구에 이어 영릉가를 점령하였다

한국광복군 관련 이미지
🖼️ 한국광복군 · 관련 개방 이미지(학습 보조) · 출처: 문화재청 · KOGL Type 1
  1. 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 정답
  2. 일본군의 공세를 피해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3. 이른바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4.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파견되었다
  5. 한국인 유격대를 중심으로 조국 광복회를 조직하였다

선지별 해설

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이 선지 진술은 옳음(O)

국민부 산하 조선 혁명군(총사령 양세봉)은 1932~33년 영릉가·흥경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일본군의 공세를 피해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이 선지 진술은 틀림(X)

자유시(스보보드니)로 이동한 것은 대한 독립 군단 등으로, 1930년대 조선 혁명군의 활동이 아니다.

이른바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선지 진술은 틀림(X)

남한 대토벌 작전은 1909년 일제가 호남 의병을 탄압한 작전으로 조선 혁명군과 무관하다.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파견되었다

이 선지 진술은 틀림(X)

인도·미얀마 전선 파견(1943)은 한국광복군의 활동이다.

한국인 유격대를 중심으로 조국 광복회를 조직하였다

이 선지 진술은 틀림(X)

조국 광복회(1936)는 동북 항일 연군 계열의 조직으로 조선 혁명군과 다르다.

핵심 요약 (Q&A)

Q.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7회 41번의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A.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7회 41번은 무장 독립 전쟁에 관한 문항으로, "옳은 것"을 고르는 문제입니다.
Q.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7회 41번의 정답은?
A. 정답은 ①번입니다. 국민부 산하 조선 혁명군(총사령 양세봉)은 1932~33년 영릉가·흥경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 일제강점기 개념·기출 모아보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7회 전체 문항✏️ 이 시험 미니문제 풀기
출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7회 기출 (원문 보존)해설 기준: 출제 당시 법령·판례 · 개정 사항은 ⚠️ 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