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사 — 국제정치학 기출 모아보기
이 논점의 기출 선지 28개 · 시험 4개
외교사은(는) 국제정치학 기출에서 반복 출제되는 핵심 논점입니다. 아래는 국제정치학 기출 시험 4개에서 이 논점이 출제된 선지 28개를 OX 명제와 해설로 정리한 것입니다. 각 명제의 정답(O/X)을 먼저 판단한 뒤 해설로 근거를 확인하세요.
헷갈리는 선지는 “이 논점만 집중 회독하기”로 반복 학습하면 시험장에서 같은 논점이 변형 출제돼도 바로 풀립니다.
2021 국가직7급
O청나라는 승전국 영국에 홍콩을 영구 할양하였다.
1842년 난징조약으로 청은 홍콩섬을 영국에 영구 할양했다.
2021 국가직7급 10번 ›O난징조약으로 청나라는 양쯔강 이남의 다섯 항구인 상하이, 닝보, 푸저우, 샤먼, 광저우를 개항하였다.
난징조약으로 청은 광저우, 샤먼, 푸저우, 닝보, 상하이의 5개 항구를 개항했다.
2021 국가직7급 10번 ›X영국 상인들은 난징조약에 명시된 개항장을 통해 면 산업의 생산과잉 문제를 해소하고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개항 이후에도 중국의 자급적 경제 구조 때문에 영국 면제품 판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해 생산과잉 문제를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다.
2021 국가직7급 10번 ›O난징조약 이후 취약해진 청나라는 미국, 프랑스와도 각각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였다.
난징조약 이후 청은 미국과 왕샤조약(1844), 프랑스와 황푸조약(1844)을 체결했다.
2021 국가직7급 10번 ›O19세기 후반 이래 유럽동맹체제의 경직화가 주요한 개전 요인의 하나였다.
삼국동맹과 삼국협상으로 굳어진 동맹체제의 경직성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주요 구조적 요인으로 꼽힌다.
2021 국가직7급 15번 ›O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민족문제가 주요한 개전 요인의 하나였다.
발칸 지역을 둘러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민족문제는 사라예보 사건과 함께 개전의 주요 요인이 되었다.
2021 국가직7급 15번 ›O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윌슨의 이상주의에 의해 국제연맹이 수립되었다.
윌슨의 이상주의(14개조)에 따라 전후 집단안보 기구인 국제연맹이 창설되었다.
2021 국가직7급 15번 ›X베르사유 조약에 의해서 오스만제국이 해체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과의 강화조약이며, 오스만제국의 해체는 세브르 조약(및 이후 로잔 조약)에 의해 이루어졌다.
2021 국가직7급 15번 ›
2023 국가직7급
X3국 간섭 이후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미국과 동맹 조약을 체결하였다.
삼국간섭 이후 일본은 러시아 견제를 위해 1902년 영국과 영일동맹을 체결하였다. 미국과 동맹을 체결한 것이 아니다.
2023 국가직7급 7번 ›O청나라는 청일전쟁에서 패배하여 일본에 타이완 및 펑후제도를 할양하였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청은 일본에 타이완과 펑후제도(및 랴오둥반도)를 할양하였다.
2023 국가직7급 7번 ›O청나라와 일본은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각각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면서 청일전쟁이 발발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빌미로 청·일 양국이 조선에 출병하였고 이것이 청일전쟁의 직접적 발단이 되었다.
2023 국가직7급 7번 ›O시모노세키 조약에는 청나라는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고, 조공전례(朝貢典禮)를 폐지한다는 내용이 기술되었다.
시모노세키 조약 제1조에서 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하고 조공·전례를 폐지하기로 하였다.
2023 국가직7급 7번 ›O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는 중국과 '중일공동성명'을 통해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중일공동성명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정상화하였다.
2023 국가직7급 18번 ›O기시 노부스케 총리는 미국과 안보 조약 개정을 통해 상호 방위 의무를 명확히 하였다.
기시 노부스케 총리는 1960년 미일안전보장조약을 개정하여 상호 협력·방위 관계를 명확히 하였다.
2023 국가직7급 18번 ›X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무기수출 금지 3원칙을 발표하여 평화주의 정책을 적극 추진하였다.
무기수출 3원칙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발표하였다. 나카소네 총리가 발표한 것이 아니다.
2023 국가직7급 18번 ›O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핵무기를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라는 비핵 3원칙을 발표하였다.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1967년 비핵 3원칙(보유·제조·반입 금지)을 천명하였다.
2023 국가직7급 18번 ›X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프랑스는 알자스-로렌, 자르, 란다우를 회복하였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프랑스는 알자스-로렌을 회복하였으나, 자르는 국제연맹 관리하에 두어졌고 란다우 회복도 사실과 다르다.
2023 국가직7급 24번 ›X국제연맹의 지도하에 산둥반도와 독일령 남양제도에 대한 일본의 위임통치가 결정되었다.
독일령 남양제도(태평양 도서)는 국제연맹 위임통치로 일본에 맡겨졌으나, 산둥반도는 위임통치 대상이 아니라 독일 이권이 일본에 직접 이양된 것으로 이후 워싱턴회의에서 중국에 반환되었다. 따라서 산둥반도를 위임통치로 본 진술은 옳지 않다.
2023 국가직7급 24번 ›X영국과 프랑스는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통해 전쟁 후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를 창설하기로 합의하였다.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영·프 간 오스만 영토 분할에 관한 비밀협정이며, 유대 국가 창설은 1917년 밸푸어 선언과 관련된 사안이다.
2023 국가직7급 24번 ›O로잔 조약을 통해 튀르키예는 동부 트레이스를, 그리스는 임브로스와 테네도스를 제외한 에게 제도(Aegean Islands)를 보유하기로 하였다.
1923년 로잔 조약에서 튀르키예는 동부 트레이스와 임브로스·테네도스를 보유하고, 그리스는 그 두 섬을 제외한 에게해 도서를 보유하기로 하였다.
2023 국가직7급 24번 ›
2012 국가직7급
X포츠담 회의는 독일에 조속히 중앙정부를 설치해 연합국과 함께 군비해제와 비무장화 등을 추진할 것을 합의하였다.
포츠담 회의에서 연합국은 독일에 즉각적인 중앙정부를 두지 않고 4개국 분할점령과 비군사화·비나치화를 합의하였다.
2012 국가직7급 7번 ›O포츠담 회의는 5개국 외상으로 구성되는 이사회를 설치해 독일의 동맹국들이었던 핀란드, 루마니아, 이탈리아, 불가리아, 헝가리와의 평화조약 체결문제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포츠담 회의는 외상이사회(Council of Foreign Ministers)를 설치하여 추축국 동맹국들과의 평화조약 준비를 맡겼다.
2012 국가직7급 7번 ›X포츠담 회의는 독일을 미·영·소·불 4개국이 점령한다는 원칙에 최초로 합의하였다.
독일의 4개국 분할점령 원칙은 포츠담 이전 얄타 회의에서 이미 합의되었으므로 최초 합의는 아니다.
2012 국가직7급 7번 ›X포츠담 회의는 유럽 자문이사회의 설립, 국제기구의 창설, 오스트리아 독립 등 주요한 사항에 합의하였다.
유럽 자문이사회 설립과 국제기구 창설 합의 등은 모스크바·테헤란 등 이전 회의의 결과이며 포츠담 회의의 핵심 합의가 아니다.
2012 국가직7급 7번 ›
2009 국가직7급
X비스마르크체제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 쟁탈을 약화시켜 독일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비스마르크체제의 목적은 프랑스의 고립과 동맹 네트워크를 통한 독일 안보 유지였으며, 식민지 쟁탈 약화를 핵심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공식 정답).
2009 국가직7급 18번 ›O비스마르크체제는 프랑스의 고립과 러시아의 중립을 목표로 하였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러시아의 중립을 확보하기 위해 동맹체제를 구축했다.
2009 국가직7급 18번 ›O비스마르크체제는 집단안전보장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비스마르크의 복잡한 동맹망은 세력균형을 통해 유럽 평화를 유지하려 한 점에서 집단안전보장적 성격이 있다고 평가된다(공식 정답 기준 옳은 진술).
2009 국가직7급 18번 ›O비스마르크체제는 유럽을 삼국협상과 삼국동맹을 형성시키는 데 기여했다.
비스마르크의 동맹정책은 삼국동맹 형성으로 이어졌고, 그 붕괴 이후 삼국협상이 형성되는 배경이 되었다.
2009 국가직7급 18번 ›